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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story/묵상일기

2024. 4 묵상 일기

4/8 사사기 1-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산시킨 뒤에,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유산으로 받은 땅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크신 일을 직접 경험한 지도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 

마침내 그 세대가 모두 죽어 땅에 묻혔다. 그 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전혀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약탈자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사사를 세우실 때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다. 그러나 사사가 죽고 나면 백성은 곧바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 조상보다 더 악하게 다른 신들을 쫓고 섬기고 예배했다. "

우리의 사역은 순사역이라고 해서... 대를 이어, 순을 이어가는 것에 많은 중점을 두는데, 멕시코 씨티와 코스타리카에서 우리가 사역을 일으키고, 이번에 수련회에 가서 멕시코 씨티 학생들이 수련회를 왔는데, 우리를 모르는 학생들도 많이 왔다. 우리와 함께 1학년 때부터 커서 지금 간사가 되어 사역을 하는 간사는, 우리 다음으로 여호수아 처럼, 열심히 캠퍼스를 섬기고 있다. 그리고 그 간사가 사역을 해서 우리를 모르는 (모세를 모르는...ㅋㅋㅋㅋ) 학생들이 와서 순장이 되고, 리더가 되어서 수련회를 참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우리의 순 사역이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그런 세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 순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 자녀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그런 자녀들이 되지 않기를 오늘 간절히 기도한다. 

 

4/9 사사기 10-21 

사사기가 이틀만에 끝이 났다. 사사기의 후반부는 더욱 엽기적이다. 
입다라던가, 삼손이라더가... 그나마 사사 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들임에도, 그다지 신실해 보이지도 않는다. 
사사라는 이름의 지도자들이 이모양인데, 일반적인 백성들은 더 어땠을까 싶다. 그러니, 정말 엽기적인 사사시대... 의 모습이라고 할 수 밖에.... 하나님의 진노가 끊이지 않았던 모습이라고 할 수 밖에... 

사사기의 끝에 룻기 라는 책을 기대하며, 이런 엽기적인 시대에서도 피어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사사기를 마친다. 
사사기 마지막에 베냐민 지파의 그런 이야기들... 첩을 12조각으로 나눈 이야기들... 다 잊을란다... 다 잊을란다... 
지금 이 시대도 사사기 못지 않을것이다. 정말 엽기적인 일들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여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4/10 룻기 

"네 동서는 자기 백성과 그 신들과 함께 살려고 집으로 돌아갔다."  - 나오미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입니다."  - 룻

"그대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고자 왔으니, 그분께서 그대에게 후히 갚아 주실 것이오." - 보아스

각각의 사람들이 했던 말이다. 이 사람들의 말쏙에서 정말 큰 고백이 있다. 이 사람들이 이 말을 할 때, 이 말들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지 알고 말했는지, 모르고 그냥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미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며느리가 떠난 것에 대해... 자기 백성과 그 신들과 함께 살려고 돌아갔다고... 그런데 룻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모압 백성과 모압 신들과 함께 살 수 없다고... 이미 어머니의 백성 즉 유다 백성이 내 백성이고, 그 유다 백성이 섬기는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자 한다....

룻은 정말로,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이 어딘지, 어디를 쫓아가야, 내가 살 수 있는지를 절실히 알고 있었다.

보아스 또한, 룻을 보면서, 룻이 왜 자신의 시어머니를 따라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룻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고자 온 믿음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 날개 아래 그 분의 보호하심 아래 일 뿐이다. 나는 그 곳에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내 삶을 살아가낼 수 있다. 어디 딴데 갈 생각 말아야 한다.  


4/11 삼상 1-8 

한나의 기도 - "하나님께서 죽음을 내리시며 또 생명을 내리신다. 하나님께서 가난을 주시며 또 부를 주신다. 지친 인생들에게 새 희망을 주시고 인생의 품위롸 존엄을 회복시켜 주시며 그들을 빛나는 자리에 앉히신다.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대단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낳고, 품에 안았을 때, 느꼈던 그런 신비함이 사실 죽음 앞에서도 그러하다. 그런 먼지 같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인간으로써의 품위과 존엄을 주신다는 고백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젊은 종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중에도, 사무엘은 모시로 만든 제사장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겼다." 

작은 사사기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사기의 엽기적인 일은 이제 끝이 나고 룻기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건만... 다시 사사 시대로 돌아가 그 때의 타락을 보게 된다. 제사장의 아들 조차 이렇게 이렇게 타락을 한 그런 시대에 꿋꿋이 믿음을 지키며 순전하게 살아낸 사무엘이 대단하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나도 한나도, 첫째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다. 세상에 휩쓸려 가는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엽기적으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어마 어마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길 기도한다. 

4/12 삼상 9-15 

계속 사무엘상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이미 초반부는 많이 넘어간 것 같지만...) 사사기의 연장선을 읽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사무엘을 지도했던 엘리와 그 아들들의 이야기나, 사실 사무엘의 아들들도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고... 사울까지...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있는 듯 하다. 사사기를 읽을 때, 사사들의 상태도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고... 리더들이 이 모양인데, 그 밑에 백성들은 어느 정도였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는데, 사무엘상 15장까지도 여전히 그런 느낌이 그대로 있다. 비로소 다윗의 시대가 되어서야, 그런 사사기의 모습이 좀 없어지려나... 싶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원하고,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 기름부으심을 받고, 사울이 성령 충만해 져서 예언을 하기도 하고, 꽤 초반에는 용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곧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면서, 하나님이 사울을 왕을 세우신 것을 후회하면서 오늘의 본문이 마치게 된다. 

나는 20대 때 미국에서 아주 쎄게 광야의 시간들을 보낸 후에, 이제는 광야의 시간 싫다, 훈련되는 시간 싫다... 그런 생각 많이 하고 살지만,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되세긴다, 한나야... 나중에 하나님이 너의 모습을 보고, 정말 실망스럽다~~ 하는 것보다는 그냥 광야의 길을 걷는게 낫다... 다듬어져 가는 것이 이제는 싫다 느껴져도... 나이게 몇인데 아직도 다듬어 져요?? 싶으면서도, 그래도... 나중에 실망스러워... 널 괜히 세웠어... 하는 말 듣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계속 깍이고 다듬어져 가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성장할 수 있는 광야의 길을 선뜻 걷는 것이... 훨 나은거다... 싶다. 

4/13 삼상 16-22 

본격적으로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울 때랑은 다른, 다윗이 왕이 되는 이야기...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이야기가 더 길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하나님도 후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 후회를 통해, 다른 방법을 찾으신다. 내가 해석한 성경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첫 심판으로 홍수를 사용하셨다. 홍수를 통해, 온 인류를 다시 죽이시고, 다시 시작하신다. 그런데, 그 방법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다시 시작해 봤자, 인간들은 다시 죄를 지으니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셧다. 그래서 아브람을 통해 한 민족을 만드시고, 그 민족에서 다윗과 예수를 보내시고, 인류를 구원하신다. 단 한번의 희생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런 근본적인 대안... 

아무튼, 하나님,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으시려, 다윗을 혹독히 훈련하신다. 사울의 전용 음악사가 되기도 하고, 골리앗을 쳐 죽여 국민 영웅이 되기도 하고, 요나단 같은 멋진 친구를 만나게 하시고, 왕의 딸과 결혼을 하고, 국민의 칭송을 받는 작은 목자에서 점점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미친 사울의 미움을 받고, 쫓겨 가고, 목숨이 위태롭고, 미친 척을 해야 하고... 이런 인생이 갑자기 곤두박질 치는 그 순간에, 다윗의 인생은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광야의 다윗을 만나게 될 것 같다. 그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 용감한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지가 기대가 된다. 

여행 다녀와서 일주일, 정말 치열하게 보냈다. 또 내일부터도 치열하게 보낼 것 같다. 40도가 넘어도 전도하고 야외에서 모임을 한 날은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가도, 그 다음날은 학생들이 도서관 방을 빌려서 시원하게 에어콘 바람 맞아가며 모임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젠 캠퍼스가 나가는게 외롭다는 생각은 거의 안 든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감사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4/14 삼상 23-31 

드디어 사울이 죽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도 참 좋은 에피소드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그리고 언제든 전쟁 전에 하나님께 에봇을 가져오라 해서 물었고, 그 때마다 하나님은 바로 바로 응답해 주신다. 
사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듣지 못해, 무당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내는 짓까지 하는데 말이다... 정말 두 사람의 비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본문이었다. 

다윗-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라는 책을 오랫동안 청년부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광야의 생활을 하는 다윗을 보면서, 나도 지금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었다. 그리고, 이제 광야의 삶 끝이다!!! 하면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계속해서 이런 저런 훈련으로 나를 계속 연단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했었다... 한국에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광야군요... 할 때, 그리고 나의 진로를 위해 고민할 때, 그 때, 내가 하나님께 뭘 물을 때마다, 즉각 즉각 응답해 주셨었던 하나님이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때, 다른 톤으로 나에게 말씀해 주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는 듯 하다. 광야의 삶은 힘든 것 같지만, 진심,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다. 


4/15 삼하 1-8 

사울이 죽었는데도, 다윗의 삶은 평탄하지가 않구나... 싶다. 5장 전까지는 다윗이 왕이 된건지 아직 아닌건지 좀 잘 모르겠고. 그럼에도 호칭은 다윗 왕으로 나와서 왕이 되긴 됬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여전히 다윗은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계속해서 사울과의 엮였던 일들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스보셋에 관한 이야기) 하지만, 계속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손대지 않는 것에 대한 철칙을 지켰고, 그 몫은 늘 하나님께서 해주셨다. 그렇기에 다윗은 욕심을 내지 않았으나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궤가 돌아올 때,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나,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은 정말 다윗의 순전함을 보여준다. 

우리 둘째는 상상하지도 못할 리포트를 받아온지 일주일 만에 또 문제를 일으켜서 리포트를 받아왔다. 벌써 리포트가 두번째고, 한번더 받으면 정학이란다. 오늘 이 아이와 울면서, 왜 그랬냐... 얘길 해봐도, 그 때 뿐... 정말 이리튀고 저리튀는 그런 아이를 어디서 부터 가르쳐야할지를 모르겠다. 

다윗의 삶처럼, 산넘어 산이어도, 마음만은 변치 말길...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전한 마음 잃지 않길... 

4/16 사무엘하 9-15 

왕이 되고 나서, 다윗은 참 죄를 많이 지었다. 결코 잊혀지지 않을 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관련된 죄... 그리고 암놈과 다말, 압살롬 사이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죄... 등등... 어찌보면 사울이 결정적으로 지은 죄... 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을 취한 죄라든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주관한 죄... 등, 어찌보면, 그 강도로 따지면, 그리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오히려 다윗의 죄는 더욱 심각해 보이는데,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에는 후회하셨고, 다윗한테는 일절 그런 말씀이 없으셨는지... 

누구나 죄를 짓는다... 죄를 지었냐, 안지었냐의 문제가 아니다... 죄를 짓고, 누군가가 그 죄를 지적했을 때, 그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뉘우치느냐가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나의 성장을 위해 충고를 하거나, 나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더욱 어려워짐을 느낀다. 남편에게는 죽어도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는 말은 하기 싫고, 학생들 앞에서, 스틴터들 앞에서 내가 뭔가 실수 하고, 잘못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 있다. 나는 더 어른스러워지고 싶다. 나이만 먹는 그런 어른 말고, 마음을 열고, 하루 하루 더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어른, 마음이 더욱 너그러워지고,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지고.... 이세상 모든 사람이 이해가 되는 그 순간까지... 더욱 내 마음을 가다듬고, 단련하고, 성장하고 싶다. 

다윗처럼, 금식도 해가며,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며... 선지자 나단이 뭐라 해도, 괘씸하다 화내지 않고, 사역이 내 뜻처럼 흘러가지 않아도, 너그럽게 바라보고, 기도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4/17 삼하 16-21 

드디어 진도를 다 따라 잡았다. 그동안 열심히 하루에 이틀치씩 읽어 내려갔다. 다행히 사무엘 상하가 스토리 위주여서, 책 읽듯이 줄줄 읽어내려갔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두번째 고난... 압살롬의 반역에 대한 이야기다... 세 왕 이야기 라는 책을 보면, 사울, 다윗, 압살롬을 비교한 내용이 나온다.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이 기억은 안나지만,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압살롬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에도 분명히 성경을 읽었을텐데도... 압살롬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그리고, 내용 자체는 스토리 형식으로 줄줄 읽을 수는 있는데, 이 스토리의 등장 인물들이 배경 설명없이 갑자기 튀어 나오는 이름들이 많아, 얘는 누구지? 얘는 누구더라? 하면서 읽는 부분이 좀 있었다. 아비새라던가, 부하의 이름들... 아히도벨... 후새... 요압... 이란 사람은 앞에서도 나온 것 같긴 한데... 이름이 거기서 거기라서... 헥갈리고... 암튼 좀 그랬다. 바르실래는 또 갑자기 누구래... 암튼... 

나는 광야의 삶만 끝나면, 왕이 되고 나면, 평탄한 삶을 살 줄 알았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많은 복잡하고,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죄에 휩쓸려, 이리 저리 흔들리는 삶을 사는 것은 시간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광야 시대에는 멋진 생각과 행동만 하는 다윗 같았는데, 왕이 되고 나니까 쫌 아닌 것 같네... 하는 행동들도 많이 보이게 된다. 그것이, 단순히 다윗이 변했다기 보다는, 그 지위에서, 이리 저리 정신 없이 결정을 하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하나님께 물을 새도 없이, 막 몰아닥치니까... 그렇게 흔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다윗이 대단한 이유는, 신하들이 뭐라 하면, 바로 바로 태도를 고치고, 시행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은 오죽 잘 들을까... 
열린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왕인 자신에게도 충고를 아끼지 않는 신하들을 나무라지 않고, 고치려 하는 것... 하나님이 하라시는 것은 기쁨으로 하려고 하는 것...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많은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은 왕이 되었나보다. 

4/18 시편 70-78 

진도를 다 따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토요일 시편 진도가 있었다... 

오늘 밀린 시편을 좀 보았다... 오늘 본 본문은 아삽의 시였다. 아삽이 누구지? 누군지 모르겠다... 게으른 나는 조사를 해보지 않으나, 요약일기에 있을 듯... 하면 찾아보니 아니다 다를까 있다... 

아~~ 아삽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아삽이 직접 쓴 시라면... 요즘으로 치면 완전 싱어송라이터다... 음악 지휘도 하고, 노래도 만들고, 시도 쓰고... 
중남미에서 산지 10년차이지만, 스페인어 교회는 메리다에 오면서부터 처음 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주일에도 찬양도, 말씀도 모두 스페니쉬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페니쉬 찬양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스페니쉬라서 더 좋은 찬양들이 있었다. Way Maker 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찬양인데, (어쩌면 유행이 지났는지도...) 아삽의 시를 읽으면서 이 찬양이 떠올랐다. Aun que no pueda ver estas obrando, siempre estas, estas obrando... 이런 가사가 있다.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없어도, 언제나, 언제나 일하고 계시네... 이런 내용인데, 스페니쉬로 부르면 라임이 더 좋다... 

암튼, 아삽이 누군지 알기 전, 그의 시를 읽으며, 뭔가 억울한 일을 되게 많이 당한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사람의 솔직함을 시에 잘 나타낸 사람 같다... 나 같은 사람... 하나님 한테, 열 받으면 열받는데로, 투정 부리고 싶으면 막 투정 부리는 그런 사람... 

"하나님께서 자비 베푸시는 것을 잊으셨나? 
노여움으로 우리를 버리고 떠나가셨나? 
운도 없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내가 필요로 할 때면 어김없이 일을 쉬시는구나." 

하다가 갑자기 

"내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한번 더 새기고 옛적 기적들을 돌이ㅕ 봅니다. 주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곰곰이 묵상하고, 주님의 행적들을 오랫동안 그리며 바라봅니다." 라며 180도 다른 고백을 한다. 싸이코패스마냥... (완전 나다) 

이런 솔직한 시의 표현이 너무 좋았다. 아~ 나만 불평하는게 아니네, 나만 하나님 앞에 투정 부리는게 아니네? 싶어서... 나야 불평과 투정으로 끝나지만, 적어도 아삽은 그렇게 시를 끝내진 않았구나... 그러면서... 

그래... 불평할 수도 있지... 투정부릴 수도 있지... 내 아빤데... 내가 아빠한테 그렇게도 못하나? 하지만, 그렇게는 생각하지 말자... 하나님이 일하시는 걸 포기하셨나? 이제는 날 떠나셨나? 아무 일도 안하고 계시나??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은 가장 열심히 내 뒤에서, 혹은 내 앞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자. 

4/19 시편 79-101 

아삽의 시가 끝나고 84장에 고라의 시가 나온다. 

고라 또한 누군지 내가 정확히는 모르나... (ㅠㅠ) 아무튼 고라 자손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 같은 역할을 했던 자손이었다. 
고라 자손은 돌아가면서 24시간 365일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직접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너무 아름답다... 

"주님의 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가 전부터 이런 곳에 살고 싶었고, 주님의 집에 방 한칸 마련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 리쁨의 노래 불러 드릴 날ㅇ르 꿈꿔 왔습니다.

주님의 집에는 새들도 숨을 곳과 피난처를 얻습니다. 그곳에 살며 노래하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지요? 
주께서 거처로 삼으신 모든 이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들의 삶은 주께서 거니시는 길이 됩니다.
주님의 집, 이 아름다운 예배 처소에서 보내는 하루가 그리스 해변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낫습니다. 
내가 죄의 궁궐에 손님으로 초대받느니,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 바닥을 닦겠습니다." 

전에 칸쿤에서 있었던 오륜교회 영서 ㅇ수련회에서 마지막날에 각각 선교사님들 가정이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와서 나눔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각각 선교사님들이 너무 길게 나누셔서 우리 포함 뒷 사람들은 나누지 못했지만..) 모든 어려웠던 일을 나누는 선교사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메리다에서 알게된 사모님이, 고백을 하시길, 다른 선교사님들의 삶을 들어보니, 저는 너무 평탄하게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멕시코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메리다에 정착을 했고, 오자마자 집 사고, 큰 어려움 없이 교회를 3개나 개척하고 선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이러면서,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뭐 이런식으로 나눔을 마치셨는데, 나는 자신의 삶에 대해 그렇게 솔직하게 나누는 분이 계시다는게 너무 놀랐다.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라서... 맨날 어디가면 오바하고, 온 세상 고생은 내가 다 한것 처럼 굴 때가 많았고, 그런 분들을 많이 봤다... 단골 레파토리가 성도 하나 없는 예배당에서 사모랑 둘이 기도하다 성도가 왔다는... 뭐 그런 간증들... 오랫 동안 공들인 교인이 배신하고 떠났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들... 그분이라고, 삶을 돌아보면,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느냐마는... 그런 삶의 어려움 보다는, 하나님께 받은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나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삶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고라 자손 또한 그럴 수 도 있겠다... 왜 우리 가정만, 밤 낮없이 성전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성전을 지키고, 청소하고, 궂은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영광을 받는건 레위 자손이다... 뭐 이러면서... 사실, 자신들의 처지를 불평할 수도 있을텐데, 밤 낮없이 성전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그 일을 얼마나 감사하며 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자주 묵상 나눔에서 나도 신세 한탄을 할 때가 많다... 왜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캠퍼스에 저만 맨날 가서 전도합니까? 그 많은 간사들, 선교사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혹은 시원한데서 신학교 사역이나 하고, 그러는데, 왜 저만 이렇게 땡뼡에 늘 걸어다니고, 들어주지 않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고, 이 놈의 사영리는 몇백번을 전해야 하는겁니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신세 한탄을 할 때가 많지만, 나는 안다... 내 사명이 얼마나 귀한 사명인지... 이제는 좀 엄살 좀 그만 부리고, 진짜 주님이 나에게 주신 감사가 무엇인지를 더 많이 고백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믿는 사람들과의 공동체에서만 내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비신자를 찾아다녀야 하고, 매일 매일 복음의 노른자를 전해야 하는 그런 사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명 이상은 사영리로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쁜일인가요?? 잃어버린 영혼이 하난 돌아올 때마다 하늘에서 하나님 기뻐 춤추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저랑 같이 하늘에서 춤추고 계시나요?? 저번주에도 한번도 자신의 인생에서 예수님을 영접해 본적 없다는 학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저랑 순모임을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 키워 놓은 애들, 다 성숙한 애들 모아놓고, 훈련 시키고,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구원의 확신부터 가르쳐야 하는 이 일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일인지...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쭉 알려주면서, 모세도 모르는 애들한테 모세를 알려주고, 다윗도 모르는 애들한테 다윗을 알려주고... 하는 일들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루 하루 저와 함께 해 주면서 하늘에서 함께 춤춰주세요... 

4/22 사무엘하 22-24 

다윗의 부정적인 이야기로 끝나는게 조금 아쉽다... 그런데, 최근 이틀간, 시편을 열심히 묵상하고 돌아왔더니, 다윗의 시가 사무엘 하 22, 23장에 나오는 걸 보고... 잠시 내가 시편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했는데, 암튼, 다윗의 찬양들을 읽으면서, 

그냥 삼상, 삼하를 진도가 밀린 관계로다가 빠르게 하루에 많은 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왠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광야에서 훈련을 받을 때는, 느낌이 밝아 보였고, 다윗도 참 멋져 보였는데, 오히려 왕이 되고 나서의 다윗의 이야기는 좀 어둡고, 안 좋은 일도 많았던 것 같다. 오히려, 광야의 고난 뒤에는 다윗의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이라이트는 커녕, 더 쓰러지고, 실수하고, 넘어지는 다윗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오늘 사무엘하의 마지막장도 그렇고... 하지만, 이런 다윗의 시들을 보고 있자니... 다윗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왕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노래를 쓰고, 불렀을 때가 아닌가 싶다. 다윗의 인생의 순간 순간에, 어려움이 찾아와도, 시련이 찾아와도, 오히려 그래서, 하나님께 더 부르짖고,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결국에 찬양하는 그 순간이 아마도 다윗 인생의 가장 클라이막스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바지가 벗겨지도록 춤추던 그 다윗이... 목동으로 살아가면서, 무서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던 그 다윗... 죄로 무너져 졌어도, 다시 회개하고, 회복하고, 주님께 회복의 찬양을 올리던 그 다윗... 그 때가 다윗왕 인생의 가장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나의 인생도, 내가 뭔가 높은곳에 올라가고, 모든게 다 잘풀릴때...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강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그 순간 순간이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4/23 왕상 1-6 

다윗의 노년과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는 부분이다. 
솔로몬도 또한 평탄하게 왕이 된 건 아니었다. 아도니야 라는 놈이 스스로 왕이 되겠다 했었고, 왕이 된 후에도, 이 아도니야라는 놈은 솔로몬의 엄마 밧세바를 꼬셔서 수넴사람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부탁을 하라고 한다. 

"수넴 사람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라니요, 어찌 그런 부탁을 하십니까? 그는 나의 형이고,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류야의 아들 요압이 그의 편이니, 차라리 온 나라를 그에게 고스란히 바치라고 하지 그러십니까!" 

뭐... 성경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써는 수님 사람 아비삭과 아도니야가 결혼을 하면 어떤 영향이 있는건지... 알길 없지마는... 이 솔로몬의 대답을 가지고 유추해 보자면, 제사장과 요압이라는 힘있는 신하가 아도니야의 편인제, 수님 사람 아비삭까지 그의 아내가 되면 엄청난 파워를 가질꺼고... 그런 나의 왕권은 약해 질텐데... 아예 그냥 왕위를 고스란히 주라고 하시지 그러십니까? 뭐 대충 이런 상황 아닐까 싶다. 

밧세바는 뭔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솔로몬의 성품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어머니 부탁이라면 왠만하면 들어주었을텐데, 이건 아마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부탁이었을게다... 

하지만, 왕권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았을 무렵, 어머니까지 와서 그런 부탁을 하는데, 그 앞에서 바로 어머니께,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 하고, 바로 아도니야와 요압, 아비아달까지 확실하게 처단하는 걸 보면, 솔로몬의 결단력,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옳지 않은 것을 바로 바로잡는 모습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강한 리더쉽에 엄청난 지혜까지 더해졌으니,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그렇게 성장한 거겠지... 

나는 우리 스틴터 들한테 여기는 전쟁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상처를 치료받으려고 오는데가 아니다... 한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전쟁터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정말 옳은 것에는 더 많이 열심을 내고, 정말 옳지 않은 것 앞에서는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결단력, 용기,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4/24 왕상 7-11 

다윗왕의 왕 때 이야기를 읽을 땐, 뭔가 되게 어둡고, 왕으로써, 다윗이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구나... 싶었는데, 솔로몬의 왕 때 시절은 너무 행복한 일도 많았고, 엄청난 지혜와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성전을 짓고, 성전을 봉헌하면서 하는 기도는 너무 감동적이다. 기도는 그냥 하나님과 하는 대화이지만, 가끔씩 기도를 할 때, 말을 되게 잘 하고, 기도를 막 막힘없이 쭉쭉하시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싶은데, 솔로몬의 기도가 정말 그 표현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멋지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너무 느껴진다. 이런 솔로몬이었는데, 왜 그렇게 여자에 집착하게 된건지... 그리고, 결국에 그 죄로 인한 댓가로, 나라를 하나로 이어가지 못하고, 둘로 나눠지는 슬픈일이 생긱고, 나는 여로보암 왕이 무슨 반란 같은 걸 일으켰겠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나라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동일하게, 다윗의 길을 따르고,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견고한 나라를 지어 줄 것ㅇ르 약속하시는 모습을 보고... 북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구나... 생각했다. 그 북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했어도... 근데, 내가 아는 성경 지식으로는... 북 이스라엘에 세워진 왕중에 한 한명의 왕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왕은 없었다. 여로보암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다윗의 길을 따랐던 왕은 단 한명도 없었다. 얼마나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셨을까... 

삶의 순간에 너무 너무 빛나는 순간도 당연히 있겠고, 쫓겨 다니고, 암담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당연히 있겠지만, 결국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실하게 따랐느냐가 이생의 마지막의 평가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같다. 실패하고, 좀 실수해도... 다시 일어서서 주님의 길을 가는 것... 그게 결국에는 승리하는 길이다. 

4/25 왕상 12-14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이야기다... 
어쩜... 이름도 비슷한 두 왕이, 하는짓도 비슷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번에 여로보암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고, 많이 놀랬다. 

"내 종 다윗이 한 것처럼 내 지시에 따르고 명령에 순종하여 나를 기쁘게 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다윗에게 한 것같이 너에게도 견고한 나라를 지어 줄 것이다." 하셨는데, 나중에...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예언자가 한 말이 "내가 미천한 너를 일으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 내가 다윗 집안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너에게 주었건만, 너는 내 종 다윗처럼 살지 않았다. 다윗은 내 명령대로 행하고 일편단심으로 살면서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너는 이방 신들, 거짓 신들을 만들어 그 누구보다 악한 일을 행했다. 나를 거부하고 내게 등을 돌려, 나를 불같이 진노하게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는 것 뿐인데... 왜 그걸 못하는걸까?? 안타깝기만 하다... 근데, 나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걱정, 아들들 걱정, 돈 걱정, 사역 걱정에 내 어깨를 누르며 살아가지만, 사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하나님의 지시에 따를 는 것 뿐.. 발버둥치지 말고, 평안하에 물에 둥둥 떠있어 보자... 아둥바둥 살지 말고, 그저... 하나님이 잘되는 법을 알려주셨으니... 그 길대로 가보자... 

어제...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이라는 책을 함께 보면서, 같이 나눔을 했는데, 젊은 청년들이, 자신들 속의 부끄러운 것들을 그리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손잡고 기도하는 모습들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기도할 때, 우리는 더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선지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행동을 변화 시키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기를 간구한다. 

4/29 열왕기상 15-20 

이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시대가 끝나고 계속되는 여러 왕들... 계속되는 나쁜 왕들의 이야기... 그 안에 "아사" 라는 좋은 왕... 
그리고 역대급 나쁜 왕 아합!!!!!!!!! 아합과 엘리야의 영적 싸움! 

가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신을 믿는 일이다... 나는 아합이라는 왕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세벨의 신, 바알 신을 섬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20장을 보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께 전쟁의 여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예전에 모세가 하나님과 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에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라고 배운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내 눈에 보이기 좋아 보이는 방식으로 섬길 수 있는 신을 은연 중에 찾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때야, 신이라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냥 딱 봐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지금 우리 시대는 우리 안에 다른 신들을 가득 만들어 놓고서는, 신인지도 모르고 모시고 있는 것들이 아마도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나의 신이 될 수도 있고, 삶의 결과, 실적, 사역의 결과, 등등이, 나의 삶의 신이 되어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내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이미지를 ㅁ나들어, 진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성경에 껴 맞추는 그런 모습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하여튼, 오늘의 적용은, 남욕할거 없다는거다... 아합이나 나나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남편이 성에 안차도... 애들이 내 맘 같지 않아도... 함께 하는 동료들이 나를 힘빠지게 한다 해도... 다 나도... 똑같다는거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부족한 엄마고, 남편에겐 너무 심하게 시키는 아내고... 마음을 다 주지 않는 동료가 될 수 있겠다... 내가 잘하는게 먼저다... 

4/30 열왕기상 21-22

열왕기상이 끝났다. 아합의 이야기로 끝나는구나...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와, 아합을 향한 경고... 그리고 그의 죽음... 그리고 좋은 왕인지 나쁜 왕인지.. 살짝 애매한 여호사밧, 북 이스라엘의 아하시야까지...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지만... 그건 나의 작은 관점에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유퀴즈 보다가... 수학 일타 강사가 나와서 큰수의 확률 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주사위를 던져서 1이 나올 확률은 1/6 그런데, 딸랑 6번만 던져서 1이 안 나왔다고 해서 이 확률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딱 6번만 던졌을 때는 1이 안나올 확률이 있지만, 주사위를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던져서 확률 통계를 내다보면 1/6 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애를 낳을 때, 아들낳을 확률 반, 딸 낳을 확률 반이지만, 아들을 두번 연속으로 낳았다고 해서, 내가 다음에 딸을 낳을 가능성을 0%로라고 할 수 없고, 결국에 많은 사람들이 아들낳은 것, 딸 낳은 것 분석을 해보면 거의 반반에 가까운 숫자가 된다는 것이다. 

내 작은 눈으로, 내 작은 경우의 수로, 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인데 벌 안 받아요? 왜 내 친구 그 애는... 늘 저축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분명히 나이 들면 망할 줄 알았는데, 인생을 노력이란걸 해보지 않은 그런 애도 왜 저렇게 잘 살아요? 하지만, 전 세계를 놓고 본다면... 온 역사를 놓고 본다면... 결국에 악한 사람은 망한다는 그 진리는 이뤄지게 되어있구나... 생각한다. 짧은 시간만 이 세상을 보고 결론 내리지 말자... 역사는 길고, 하나님은 영원토록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진리성과 영원성을 내 작은 생각으로 부인하며 살지 말아야겠다. 

역시나... 아합은 처참하게 죽었고, 하나님의 공의는 늘 영원히 빛난다.